진주형씨(晉州邢氏) 중시조(中始祖)  

1世 : 형 병(邢 昞) 중시조(中始祖:1世祖)        anib11.gif 시조알기 anib01.gif             

   고려(高麗) 때 이부상서(吏部尙書:正三品: 正二品)를 지냈다. 서기 850년경 출생하였는데 우리 나라는 신라 문성왕 12년이고 발해 이진왕 21년 때이다.  이 때에 우리 나라에서는 불교 문화의 발전으로 당나라로부터 승려와 불경 등을 계속 받아들였다.  

진주형씨의 후손들은 시조 이후의 조상님들의 행적을 찾을 수 있는 많은 고서적을 찾아 연구 했으나 고구려의 역사 즉; 고구려는 서기 668년 9월에 신라(新羅)에게 망(亡)하고 신라는 고려(高麗)에게 서기 936년 9월에 망(亡)한 268년과 고구려말 34년을 합한 약 302년간의 우리조상(祖上)의 행적(行蹟)을 찾아볼 수 있는 고서적(古書籍)을 얻지 못하여 구보(舊譜)의 별록에 기록되어 내려왔든 휘병(諱昞)을 중시조 1세(中始祖 一世)로 삼아 구보 일세휘방(舊譜一世諱昉)의 상계(上系)에 십이세(十二世)를 수개(修改)하여 계대(系代)을 이어서 계미대동보(癸未大同譜) 부터 중시조(中始祖)로 삼아 계대(系代)를 이어 나왔다. 즉 이는 중국에서의 역사를 말함.  

()과 병()자 사이는 약1383년 동안 모르고 지내어 오다가 한국 형백우(邢栢宇) 중국 형지명(邢志明), 형유순(维顺)과 통역관 고재관(高在观)에 의해 201710월에 최종적으로 13인명을 찾아 양국이 확인하게 되었으나, 20189.30~10.3일 진주형씨대종회 뿌리찾기 특별위 일행 12(위원장;형백우(박순희), 형창섭, 형시영, 형춘기(이덕순), 형광석, 형남신, 형남웅, 형창수, 형남을, 형옥주)이 중국 절강성을 방문하여 일부 잘못된 인명을 찾아 바로 잡게되었다. 찾은 함(인명)자는 총 14인명 이며 다음과 같다. 한국시조 형 옹()-"()-()-()-()-()-()-()-()-대보(大寶)-굉도(宏道)-()-()-군아(君牙)의 二子-()"-중시조(中始祖) 1(): (昞). 최종 찾게된 지역은 중국 절강성 승주시 승주섬서 형씨종보와 금화오당 형씨종보를 통해서 찾을 수가 있었다.  중국 형씨종친회 부회장 형력책(邢力策)님의 설명은 중국 형가(家) 선조님들이 정부의 명을 받고 한국을 다녀간 사람은 시대에 따라 수차례 왕래 하였다고 한다. 현재 중국 절강성 승주시 태평 마을에는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있는 형달(邢)님의 성지가 있다.   

형(邢)나라 (형태(邢台) 싱타이(Xingtai)시)

  

 (관향조)    

 

13世: 형 방(邢 昉)

    공(公)은 고려 명종(明宗) 정유년(丁酉: 서기 1177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고려(高麗) 충목왕(忠穆王) 때 문하시중(門下侍中 :문하성의 從一品 최고벼슬)을 지내고, 평장사(平章事) 대광보국(大匡輔國)을 지냈으며, 경상남도(慶南) 진주(晉州) 반성(斑城)에 정착(定着)하였다.

14世: 형승서(형승서)  

   고려(高麗) 고종(高宗) 을유년(乙酉年, 서기 1255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서 문학(文學)을 전담하였으며, 이부상서(吏部尙書: 正二品)를 역임한 청백리(淸白吏)로 이름이 높았다.

15世:형공미(邢公美)

   시(諡)는 충선공(忠宣公)이다. 작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좌복야(左僕射), 문하시중(門下侍中) 등을 지내고, 1280년 (충렬왕 6년)에 도원수(都元帥)가 되어 일본 일기도에서 왜군(倭軍)을 정벌(征伐) 하는데 공(功)을 세워 지밀직사사(智密直司事)로 일등공신(一等功臣)에 책록되고 진양군(晋陽君)에 봉해 졌으므로, 후손들은 방(昉)을 일세조(一世祖)로 삼고 진주(晉州)를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계승(繼承)하여 왔으나 계미보(癸未譜)에 상계(上系) 조상의 행적 기록이 소명하므로 계대(系代)가 十二世 증가되었다.  

  판사공파 파조(判事公波祖)                                                    

18世: 형군소(君紹)가 20세에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평양윤(平壤尹)을 거쳐 춘천(春川), 회양(淮陽), 강릉(江陵)등 삼도(三道)의 순찰사(巡察使)를 지낸 후 이부상서(吏部尙書), 정당문학(政堂文學)등을 지냈으며, 문장(文章)이 뛰어나 [동문선(東文選)]에 [부벽루운(浮碧樓韻)]이 전한다.

병사공파 파조(兵使公波祖)                                                

18世: 형군철(君哲)은 세종(世宗) 때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 강계부사(江界府使) 등을 지내고 충청도 병마사(兵馬使)를 지냈고 전라남도 남평(南平)에서 살았다.   

 서기 2000년 9월 호반의 도시 춘천에서 형백우(邢栢宇) 인사드립니다.       arrow29_u.gif처음    house03_blueroof.gif http://www.hyongc.net